2009년 04월 23일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12)
제 12 서한
우리들 내부에 있는 필연적인 것을 현실화하고 우리들 외부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필연성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이중의 임무를 실현하도록 우리는 상반된 두 힘으로 부터 강요를 받게 됩니다. 이 상반된 두 힘은 제각기 자신의 대상을 실현하도록 우리를 독려하는 까닭에 아주 적절하게 충동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충동들 가운데 제가 감성적 충동 sinnlicher Trieb 이라고 부르려 하는 첫번째 충동은 인간의 물리적 현존 또는 그의 감성적 본성으로 부터 출발하고, 인간을 시간의 제한 속에서 두고 물질로 만드는 일<=오로지 자연법칙의 지배만을 받는 물리적 세계의 구성요소로 만드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렇지만 이 충동은 그에게 물질을 받아들이고 불변하는 존재인 자기 자신과를 구별하는 인격의 자유로운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질이란 시간을 채우는 변화나 또는 현실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충동은 변화가 있을 것과 시간이 내용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단지 내용으로 채워진 시간에 불과한 이러한 상태는 감수(感受)라고 불리우며, 물리적 존재가 현신 (顯身)하는 것은 오직 그 상태 뿐입니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존재함으로써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이 배제됩니다. 우리가 어떤 악기로 하나의 음을 내며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음들 가운데 오직 이 유일한 음만이 실현된 것입니다. 인간이 현재적인 것을 느낄 때에는 그의 모든 무한한 규정 가능성들은 이러한 유일한 방식의 현존에 한정됩니다. 그러므로 이 감성적 충동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최고의 제한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양(量)의 단위, 즉 시간의 채워진 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은 감각이 그를 지배하고 시간이 그를 잡아채는 한 지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인 한, 이 감성적 충동이 지배합니다. 그리고 모든 형식이 단지 물질에만 나타나고, 모든 절대적인 것이 단지 제한의 매개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물론 인간성의 전 현상이 궁극적으로는 감성적 충동에 매어 있습니다. 비록 이 충동만이 인간성의 소질을 환기 시키고 신장시키시는 하지만, 인간성의 완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이 감성적 충동입니다. 파괴할 수 없는 끈으로 이 충동은 더 높이 지향하는 제 정신을 감각세계에 결박하고, 그리고 추상을 무한 속으로의 그 가장 자유로운 편력으로부터 현재의 제한 속으로 도로 불러들입니다. 사고는 이 충동을 순간적으로 회피할 수 있고, 확고한 의지는 감성적 충동의 요구에 대항하여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억압된 본능은 곧 바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 존재의 현실성, 즉 우리들 인식의 내용과 우리들 행동의 목적을 강요합니다.
저 충동들 가운데 형식충동 Formtrieb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두번째 충동은 인간의 절대적 존재 또는 그의 이성적 본능으로부터 출발하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의 현상의 다양성 속에 조화를 가져오고, 그리고 상태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격을 주장하려고 애씁니다. 인격은 절대적이고 불가분의 통일체로서 자기 자신과 결코 모순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에, 인격의 주장을 강요하는 이 충동은 자기가 영원히 요구해야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식충동은 자기가 지금 결정하는 것처럼 영원히 결정하고, 자기가 영원히 명령하는 것을 지금도 명령합니다. 따라서 이 충동은 시간의 전 연속을 포괄하며, 그것은 이 충동이 시간을 지양하고 변화를 지양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 충동은 현실적인 것이 필연적이고 영원하기를 , 그리고 영원한 것과 필연적인 것이 현실적이기를 바랍니다. 달리 말해서 형식 충동은 진리와 정의를 지향합니다.
전자<=감성적 충동>는 단지 여러가지 경우들을 만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형식충동>는 법칙들을 부여합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 충동은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각의 판단을 위한 법칙들을, 행위<=실천>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각의 의지를 위한 법칙들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든지, 즉 우리가 우리들 주관의 어떤 상태에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하든지 혹은 우리가 인식에 의해서 행동하든지, 즉 우리가 객관적인 것을 우리들 상태의 규정동기로 삼든지 간에 -이 두가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상태를 시간의 관할권에서 빼내어 , 그 상태에 모든 인간과 모든 시대에 타당한 현실성,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부여합니다. 감정은 오직 이 주관에게 있어서 그리고 이 순간에는 진실하지만, 그러나 다른 순간 다른 주관이 나타나면 현재의 감수 (感受)의 진술을 철회할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상<=이성>이 한번 그렇다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결정한 것이며, 그 진술의 타당성은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는 인격 자체를 통해서 보증된 것입니다. 성향은 오직 너 개인을 위해 그리고 너의 현재의 욕구를 위해서 좋지만, 너 개인과 너의 현재의 욕구는 변화를 통해 일소될 수도 있고, 네가 지금 열렬하게 욕구하는 것은 언젠가는 너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감정이 한번 그래야만 한다 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결정합니다. -네가 진리를 진리인 까닭에 고백하고 정의를 정의인 까닭에 실행한다면, 너는 이미 하나의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경우에 타당한 법칙으로 만든 셈이고, 너의 삶의 한 순간을 영원으로서 취급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식충동이 지배하고 우리 내부에서 순수객관이 활동할 때, 존재는 최고도로 확대되고 ,모든 제한이 사라지고, 그리고 인간은 보잘것 없는 감각에 의해서 제한되었던 양의 단위에서 벗어나 현상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이념의 단위 Ideeneinheit로 향상됩니다. 이러한 조작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이상 시간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끝없이 연속적으로 우리들 내부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개체가 아니고 종(種)이 됩니다. 즉 모든 정신들의 판단이 우리들 정신을 통해서 표현되고, 모든 심정들의 선택이 우리들의 행동을 통해서 대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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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다시 공부해야 겠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21세기 소년이 생각난다. 켄지...' 켄지들...요시츠네...요시츠네들....
우리들 내부에 있는 필연적인 것을 현실화하고 우리들 외부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필연성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이중의 임무를 실현하도록 우리는 상반된 두 힘으로 부터 강요를 받게 됩니다. 이 상반된 두 힘은 제각기 자신의 대상을 실현하도록 우리를 독려하는 까닭에 아주 적절하게 충동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충동들 가운데 제가 감성적 충동 sinnlicher Trieb 이라고 부르려 하는 첫번째 충동은 인간의 물리적 현존 또는 그의 감성적 본성으로 부터 출발하고, 인간을 시간의 제한 속에서 두고 물질로 만드는 일<=오로지 자연법칙의 지배만을 받는 물리적 세계의 구성요소로 만드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렇지만 이 충동은 그에게 물질을 받아들이고 불변하는 존재인 자기 자신과를 구별하는 인격의 자유로운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질이란 시간을 채우는 변화나 또는 현실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충동은 변화가 있을 것과 시간이 내용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단지 내용으로 채워진 시간에 불과한 이러한 상태는 감수(感受)라고 불리우며, 물리적 존재가 현신 (顯身)하는 것은 오직 그 상태 뿐입니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존재함으로써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이 배제됩니다. 우리가 어떤 악기로 하나의 음을 내며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음들 가운데 오직 이 유일한 음만이 실현된 것입니다. 인간이 현재적인 것을 느낄 때에는 그의 모든 무한한 규정 가능성들은 이러한 유일한 방식의 현존에 한정됩니다. 그러므로 이 감성적 충동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최고의 제한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양(量)의 단위, 즉 시간의 채워진 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은 감각이 그를 지배하고 시간이 그를 잡아채는 한 지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인 한, 이 감성적 충동이 지배합니다. 그리고 모든 형식이 단지 물질에만 나타나고, 모든 절대적인 것이 단지 제한의 매개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물론 인간성의 전 현상이 궁극적으로는 감성적 충동에 매어 있습니다. 비록 이 충동만이 인간성의 소질을 환기 시키고 신장시키시는 하지만, 인간성의 완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이 감성적 충동입니다. 파괴할 수 없는 끈으로 이 충동은 더 높이 지향하는 제 정신을 감각세계에 결박하고, 그리고 추상을 무한 속으로의 그 가장 자유로운 편력으로부터 현재의 제한 속으로 도로 불러들입니다. 사고는 이 충동을 순간적으로 회피할 수 있고, 확고한 의지는 감성적 충동의 요구에 대항하여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억압된 본능은 곧 바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 존재의 현실성, 즉 우리들 인식의 내용과 우리들 행동의 목적을 강요합니다.
저 충동들 가운데 형식충동 Formtrieb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두번째 충동은 인간의 절대적 존재 또는 그의 이성적 본능으로부터 출발하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의 현상의 다양성 속에 조화를 가져오고, 그리고 상태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격을 주장하려고 애씁니다. 인격은 절대적이고 불가분의 통일체로서 자기 자신과 결코 모순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에, 인격의 주장을 강요하는 이 충동은 자기가 영원히 요구해야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식충동은 자기가 지금 결정하는 것처럼 영원히 결정하고, 자기가 영원히 명령하는 것을 지금도 명령합니다. 따라서 이 충동은 시간의 전 연속을 포괄하며, 그것은 이 충동이 시간을 지양하고 변화를 지양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 충동은 현실적인 것이 필연적이고 영원하기를 , 그리고 영원한 것과 필연적인 것이 현실적이기를 바랍니다. 달리 말해서 형식 충동은 진리와 정의를 지향합니다.
전자<=감성적 충동>는 단지 여러가지 경우들을 만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형식충동>는 법칙들을 부여합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 충동은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각의 판단을 위한 법칙들을, 행위<=실천>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각의 의지를 위한 법칙들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든지, 즉 우리가 우리들 주관의 어떤 상태에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하든지 혹은 우리가 인식에 의해서 행동하든지, 즉 우리가 객관적인 것을 우리들 상태의 규정동기로 삼든지 간에 -이 두가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상태를 시간의 관할권에서 빼내어 , 그 상태에 모든 인간과 모든 시대에 타당한 현실성,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부여합니다. 감정은 오직 이 주관에게 있어서 그리고 이 순간에는 진실하지만, 그러나 다른 순간 다른 주관이 나타나면 현재의 감수 (感受)의 진술을 철회할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상<=이성>이 한번 그렇다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결정한 것이며, 그 진술의 타당성은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는 인격 자체를 통해서 보증된 것입니다. 성향은 오직 너 개인을 위해 그리고 너의 현재의 욕구를 위해서 좋지만, 너 개인과 너의 현재의 욕구는 변화를 통해 일소될 수도 있고, 네가 지금 열렬하게 욕구하는 것은 언젠가는 너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감정이 한번 그래야만 한다 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결정합니다. -네가 진리를 진리인 까닭에 고백하고 정의를 정의인 까닭에 실행한다면, 너는 이미 하나의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경우에 타당한 법칙으로 만든 셈이고, 너의 삶의 한 순간을 영원으로서 취급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식충동이 지배하고 우리 내부에서 순수객관이 활동할 때, 존재는 최고도로 확대되고 ,모든 제한이 사라지고, 그리고 인간은 보잘것 없는 감각에 의해서 제한되었던 양의 단위에서 벗어나 현상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이념의 단위 Ideeneinheit로 향상됩니다. 이러한 조작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이상 시간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끝없이 연속적으로 우리들 내부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개체가 아니고 종(種)이 됩니다. 즉 모든 정신들의 판단이 우리들 정신을 통해서 표현되고, 모든 심정들의 선택이 우리들의 행동을 통해서 대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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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다시 공부해야 겠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21세기 소년이 생각난다. 켄지...' 켄지들...요시츠네...요시츠네들....
# by | 2009/04/23 23:1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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